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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 사람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문화예술교육,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만나 현장과 호흡하는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섞이는 ‘프리포트 코리아’를 꿈꾼다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대해
인터뷰이 섹 알마문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상근활동가·영화감독 인터뷰어(필자) 고영직 _ 문학평론가 등록일 2019-12-23 조회수 1134
‘우리는 인력(人力)을 원했는데 인간(人間)이 왔다.’
어느 외국 작가가 말한 이 표현은 문화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식의 전환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의 가치와 철학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대놓고 누군가를 모욕하지 않는다고 모욕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를 쓴 김지혜 교수는 말이 아니라도 시선과 행동으로 모욕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21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처음 와서 2009년 귀화한 영화감독 섹 알마문은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Asia Media Culture Factory, AMC)에서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꿈, 떠나다> (2017)를 비롯해 7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 활동하며,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섹 알마문 감독을 만나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래 가사에 반하다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특별히 이주노동자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1998년에 처음 한국에 와서 남양주시 마석 가구단지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1년 무렵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퇴직금을 못 받았다. 한국인 친구를 통해 ‘평등노조’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노조를 통해 230만 원 가량의 퇴직금을 받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면 반드시 뭔가를 갚아야 하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노조에 찾아가서 “얼마를 주면 되겠냐?”고 했더니, 한국인 노조위원장이 ‘돈은 됐고, 일요일마다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집회가 열리니 와달라’고 했다. 이때 처음 이주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회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철의 노동자>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한국말을 잘 몰랐을 때였는데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가사에 빠지게 됐다. 바로 다음 주에 노조에 가입했다.
2003년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농성에 참여했다. 농성이 끝나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했다. 그 친구는 학생이었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해서 내가 공장에 돌아가서 일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해서 2011년에 그만두고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가 생기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있을 때 연기나 연극에 관심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에는 다문화예술극단 플레이어(Player)에서 <카페 랑겔라> (Cafe Rangila)라는 연극을 했다. 나는 무대감독이었는데 연출자가 연기자 한 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6개월 동안 연습했다. 연출한 친구가 영화작업도 했는데 나에게 영화연출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서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고, 그게 영화감독의 시작이었다.
이제는 방글라데시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 방글라데시와 한국, 두 개의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면 어느 시간과 공간이 자신에게 더 ‘기쁨’이 많았던 시간이었나.
방글라데시에 있을 땐 정신없이 살았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잘 몰랐다. 한국에 와서 하루하루 어떻게 가는지 시간에 대한 경험이 생겼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방글라데시에서는 남들이 어떻게 살든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오니까 옆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국에 와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많이 배운 것 같다고 느낀다.
자신의 ‘타자성’을 한국에 와서 발견한 것 같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님이 다 해주었다. 한국에 와서 가구단지에서 일하다가 순간접착제가 눈에 들어갔다. 공장 사장 말로는 ‘물로 씻어주고 쉬면 된다’고 했는데, 공장에서 기숙사에 걸어오는 도중에 두 번 부딪쳤다. 가까이 사는 방글라데시 형에게 부탁해서 구리병원 가서 치료받았다. 그러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삶에서 엄청 필요하구나 느꼈다.
정지용 시인이 <고향>이라는 시에서 비슷한 의미를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근대의 시간은 결국 타자성을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 방글라데시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타자성을 발견하신 것 같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로 성장하게 된 계기, 사건,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나와 비슷하게 한국인이랑 결혼하고 한국 국적을 얻은 친구들 중 사업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 친구들처럼 사업했으면 돈을 좀 벌었을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가면 사람들이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 길을 갈까 생각하면 친구들 덕분이다. 친구 노동자들이랑 하는 일이 많고, 내가 이 친구들에게 도움 주는 것보다 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기분이 좋잖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가 쉬운 게 아닌데…. 지금도 방글라데시에 가면 50~6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 동네 놀러 오라고. 그런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한번은 방글라데시에 갔는데 아버지가 전에 누가 찾아왔다는 거다.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하니까 자기 동생이 한국에 사는데 동생이 갖다주라고 했다며 새우를 가지고 왔더라. 누구라고 말하니까 기억이 났다. 아버지도 퍽 감동을 받았다. 이전에는 돈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미디어는 목소리 없는 이주민들의 ‘목소리’ 같은 것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 생각도 바뀌신 것 같다.
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문화예술을 통해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나 고민을 한다. 우리 단체에서 이주노동자가 미디어를 쉽게 다룰 수 있게 이주민 유튜버 워크숍을 한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이주민 독립영화제작 프로젝트를 했다. 내가 감독을 맡고 로빈 쉬엑(출연)과 함께. 6개월에 걸쳐 첫 작품 <파키> (Paki, 2013)를 만들었다. 파키는 ‘새’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괜찮은 영화제에 출품했다. 영화제 출품하면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통로가 된다. 한국의 미디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찍은 미디어는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 아닌가. 그런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감독님은 당사자로서 한국과 이주노동자를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여전히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이 그치지 않고, 헤이트 스피치도 도를 넘고 있다. 텔레비전·영화 같은 미디어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동어반복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영화 <청년경찰>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한국의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이주노동자 혹은 국제결혼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보시는가.
미디어에서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시선을 오히려 안 좋게 하고 있다고 느낀다. <고부열전> (EBS)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며느리가 한국말 배우면 되는데, 다 며느리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편집’된 영상을 보여준다.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도 그렇다. 이주노동자 가족들이 쉽게 한국에 못 오는 원인이 오직 ‘돈이 없어서’ 그렇다는 식이다.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 제도적으로는 이주노동자가 가족을 추천해서 데려오려고 해도 비자 발급이 안 되고, 이주노동자가 자기 나라에 가려고 해도 사장 허락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이주노동자 평균 월급이 240만 원 이상이네, 한국이 이주노동자에게 쉽게 해주고 있네, 걔네가 그렇게 잘살고 있네, 그런데 세금도 안 내네…, 그런 말들이 나온다. 최저임금이 180만 원이다. 그럼, 240만 원을 벌려면 그보다 얼마나 더 많이 일해야 60만 원이 추가되는지는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는 ‘사실’대로만 반영해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시청자를 울려야 하니까 반복적으로 그런 태도를 취한다. 미디어가 앞장서서 혐오를 조장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지금도 쓰이고 있지 않나. 사람 앞에 ‘불법’을 붙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한국의 많은 미디어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그냥 쓰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정부에서도 포용국가를 표방하는데 무엇이 배제되는지는 잘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어린아이’ 취급하려는 우리 안의 시선들이 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계. 인간이 아니고 ‘기계’ 취급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제도에서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있는 기간 모범적으로 살고 사장이 원하면 9년 8개월 동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20대 노동자가 30대엔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이야기잖나.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사면 10년이면 바꾸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를 보는 시선이 기계가 아니라면 젊은 20대가 노동자로 와서 10년 동안 기술도 배우고 언어도 배우는 데 왜 정부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가. 싱가포르나 홍콩을 보면 사장이 원하면 노동자들이 계속 연장해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혹은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을 계속 원하기 때문에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회적 성원권’은 이주민을 위한 시민권이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 사회의 문화다양성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는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달라진 건 정부 기관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 정도이다. 내가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문화다양성 기간을 정해서 한 달 행사하는 식이다. 그런 행사를 통해 문화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간을 잡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뭔가를 계속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보여주기 위한 사업이 많다. 또 문화다양성 이야기를 하면서 누가 프로그램을 리드하고 진행하는지도 보아야 한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문화다양성 이야기를 한다.
선주민(先住民)인 한국인들이 문화다양성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어떤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는가.
이주자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소수자에 대한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조례 만드는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 한국인 활동가들만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다양성은 지원하고, 사업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려면 이주노동자들이 숨 쉬게 해주어야 한다.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이 나라에서 살게 해주고, 이 사람들이 앞서서 뭔가 하게 해야 한다. 유독 ‘우리 문화(=한국인만의 문화)’를 강조하니까 뭐가 안 되는 것 같다. 서울시 사업 중 이주민 커뮤니티에 5백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다. 4~5년간 추진됐는데, 올해 중단됐다. 예산이 줄어서 선주민들과 함께하는 예술제도 힘들어졌다. 사업비 받고 활동하는 이주인권 사업인데 이주민이 아무도 없는 곳도 여럿 있다. 이주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어떤 의도를 끌고 가야 하는데 아직 발전이 안된다. 이주민 100퍼센트 쿼터제를 해야 하지 않나.
감독님 이야기를 들으니 ‘사회적 성원권’ 차원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씁쓸하다. 한국은 식민지, 전쟁, 분단을 겪으며 민족이산의 경험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 많다. 주목할 점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들 중에는 그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면서 ‘이주문학’ ‘이주예술’의 경험을 축적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김학철 작가, 미국의 이창래 작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창래가 쓴 『네이티브 스피커』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소수자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감독님도 문화예술활동을 하시는데, 왜 한국에서는 이주자들의 이주문학, 이주예술이 안 나온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감독님이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작업을 해주셨으면 한다.
우리는 당장 뭐가 바쁜 것보다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다 보니까 거기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우울한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관객 중에는 ‘감독님, 좀 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때요.’ 그러는 관객들이 있다. 나도 그러고 싶다. ‘행복한 이주노동자’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한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 슬픔은 있지만, 행복도 있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다. 모든 이주노동자가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주노동자 중 80%는 자신이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인권 침해 당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성희롱도 자신이 인지해야 성희롱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자기 나라에서 인권에 대한 경험이 없다보니 잘 인지를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드러나지 않은 인권침해가 훨씬 많다. 나도 언젠간 그런 행복한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주민의, 이주민에 의한, 이주민을 위한 문학·예술은 가능한가
영국 작가 존 버거가 사진가 장 모르와 같이 쓴 『제7의 인간』이 있다. 어느 동유럽 이주노동자를 다룬 1970년대 책이다. 감독님이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담아 그런 책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드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면 그때 감독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방글라데시에 가면 거기서도 인권운동을 하게 될 것 같다. 한국 국립극장에 매년 이주예술가들이 오는데 2014년에 방글라데시 음악가가 와서 알게 되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방글라데시에서도 문화예술활동을 할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나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 같은 문화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니까 그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슬로건이 ‘예술을 원하는 우리!’다.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는 왜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또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해달라.
예술은 언어가 필요 없다. 쉽게 만나고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예술은 벽이 없다. 우리 단체가 처음 시작한 이유는 다양한 이주민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섞여서 어울려야 하는데 ‘섞는’ 작업을 하자고 생각했다. 일반인을 섞으려면 함께 활동하고 친해져야 하는데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예술을 선택했다. 우리 공간 이름이 ‘프리포트(freeport, 자유항)’ 아닌가. 항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우리 공간에서 선주민과 이주민들이 예술로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의 활동도 그렇게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후원회비로 운영하는 단체고, 돈이 없다. 이 공간도 프로그램 하나가 돌아가면 다른 프로그램을 할 수 없다. 공간이 부족하다. 서울에는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다. 주로 경기도에서 온다. 주말에 연습하러 오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숙박이다. 지금은 작은 방에 2층 침대를 놓고 해결하고 있다. 영화관, 공연장, 연습실, 휴식공간 등이 있는 공간, 아트센터를 만들고 싶다.
섹알마문
섹 알마문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1998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2009년 귀화했으며, 2012년부터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에서 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상근활동가로 일하며 영화감독,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활동을 시작으로 창작의 매력을 느끼고 영화에 빠져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2012년 이주민독립영화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단편영화 <파키> (Paki, 2013)를 제작했다. 이후 <굿바이> (2014), <피난> (2016), <꿈, 떠나다> (2017), <세컨드 홈> (2018) 등 현재까지 단·장편 7개 작품을 연출했다. 2018년 [한겨레신문]에 <영화감독 마문의 노동일기> 를 연재했으며, 현재 방글라데시와 한국을 오가며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www.amcfactory.org
사진 _ 박영균 미디어작가 infebruary14@naver.com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으며, 문학웹진 [비유]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 웹진 [잇다]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gocritic@naver.com

위 기사의 출처는 문화예술교육 웹진 arte365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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