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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인플루언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문화예술교육,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만나 현장과 호흡하는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생태적 삶을 향한 은근한 미학적 저항
전원길 자연미술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전시감독
인터뷰이 전원길 자연미술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전시감독 인터뷰어(필자) 김종길 _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등록일 2020-07-20 조회수 168
코로나19의 기세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구는 이미 인류세에 접어들었고 그 파국의 위기가 도래한 듯 인간의 삶이 멈춰 섰다. 이미 오래전에 ‘멈춤’을 실천했어야 했다. 멈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자연미술가 전원길의 삶은 느린 삶이다. 그 삶의 수행에서 생태적 삶의 대안은 무엇인지 물었다.
지난해 하동에서 열린 ‘차밭을 걷다’ 프로젝트를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작가님도 참여하셨는데, 어떤 내용인가?
경남 하동군 악양의 ‘지리산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에서 일하는 전민정 선생이 하동 차밭에서 야외설치미술전을 하면 어떻겠냐며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단순히 차밭에 작품을 놓는 것보다는 그 지역의 현장과 관계하면서 좀 더 개념적이고 마음으로 전달되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하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장소도 참 좋았다. 지리산이라고 다 같지 않더라. 산세도 그렇고, 산과 산 사이의 공간 느낌도 편안했다. 무엇보다 하동이 아주 아름다웠다. 힘든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마음의 상처가 큰 사람들이 찾아들거나 깊은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즐겁게 작업했고 이후에도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에도 섬진강 가에 있는 송림(松林)에서 함께 워크숍을 했다.
차의 신화에, 좌선 수행을 하던 달마가 자꾸 졸음이 와서 눈꺼풀을 떼어 던져버리니 그 자리에서 최초의 차나무가 자라났다고 전한다. 그래서 차를 마시면 졸음을 쫓고 정신이 맑아진다.
하동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첫 잎 차밭이 있다. 차밭에 바위가 많은데 겨우내 그 바위가 햇볕을 받아서 열을 머금었다가 차밭을 따듯하게 데워준다고 한다. 온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니 찻잎이 일찍 싹튼다는 것이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차는 수행이다. ‘다도(茶道)’라 하는 이유다. 예술도 수행이다. 작가님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온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를 운영하면서도 자연미술가그룹 ‘야투(野投)’ 활동과 개인의 창작활동을 묵묵히 해오셨다. 자연미술의 미학을 올곧게 걸어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가님에게 예술의 도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이젠 젊지 않아서 앞으로 잘할 거라는 마음도 없다. 여태까지 한 일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예술을 하는 건 수행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수행되었나?’ 하고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다. 야투에 입문했을 때 오히려 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 쏟아낸 것 같다. 더 전진할 수 있을까? 그때 그 이상 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자연이라는 말을 쓰기도 참 조심스럽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터,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 오는 그 무언가와의 만남, 미술을 통해서 자연을 만나는 장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 야투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자연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예술 의지나 혹은 자연을 이용해서 무엇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연에 반응하는 자연미술의 작업과정은 수행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중심을 자연에 두는 미술이다. 자연을 드러내는 방법조차도 자연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서 하는 것이다. 드러나게 하는 최소한의 의지, 이런 것이 어느 순간 균형을 이루는 순간 자연미술이 발생했다는 느낌이 온다.
작가님의 <하늘길을 따라서>를 보면 온전히 자연 안에서 한 예술가의 눈과 자연이 하나의 시선이 되어 감각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藝)’라는 말은 흥미롭게도 ‘심다, 궁극, 기예’라는 뜻이 있다. 심는다는 건 생태성을 뜻하고, 궁극은 철학, 기예는 예술로서의 예이다. 어쩌면 궁극이나 기예가 아닌 예술의 생태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여기까지 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님이 궁리하는 자연미학의 생태성은 무엇인가?
나는 모더니즘 세대다. 눈으로 판단하고 눈으로 조화를 추구하고 캔버스 프레임에 갇힌다. 그런데 자연미술을 하면서 자기주도적 화면 구성이나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행위를 뒤로 미뤄놓고 자연과 동행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자연은 어디를 잘라도 어색한 데가 없다. 풀은 이렇게 나야지 저렇게 나야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그게 자연성이다. 자연의 자연성을 획득하려면 말씀하신 대로 자연의 생태성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나 조형 활동을 할 때도 흐름을 타고 과정의 논리에 따라서 그대로 움직여간다. 색을 칠해나가는 과정은 바탕색과 같은 색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하얀색에서 점점 노란색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늘을 그린다면 하늘색과 똑같이 만든다. 나의 조형적 의지나 취향보다는 감각을 그대로 자연과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다. 자연미술이 가지고 있는 요소나 특성을 함축하면 그 자체로서 살아있는 미술이다. 있는 그대로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미술은 현장에서 태어나고 현장에서 사라진다. 자연 그 자체의 생명력이 주는 힘을 자연미술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으로 들어오는 순간 대부분은 소멸한다. 2006년부터 소나무가 기획한 ‘미술농장 프로젝트’에서 ‘미술로 자라는 식물, 식물로 자라는 미술’이라는 주제로 미술과 자연을 병치시켰다. 2017 이후 ‘녹색게릴라’로 이어지는 전시기획에서는 인간의 삶 역시 생태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하늘길을 따라서>(2007, 경기도미술관)
‘인류세’라고 한다. 생태적 시선으로 보면 지구가 처한 위기는 너무나 명확하다. 예술가들은 미학적 태도와 표현으로 대중들을 각성시킬 수밖에 없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지구인으로서 지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과학이나 공학적 발명으로 점점 황폐해진 것을 다시 과학적 아이디어로 되살리려고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지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구에 사는 지구인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동물적 생존 감각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공기가 나빠지면 폐의 감각이 바로 느껴야 하는 데 잘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더 강렬하고 달콤한 것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것이 누구 한 사람의 열렬한 행동만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 감각을 되살려서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작가로서, 창의적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작업을 하지만 그것을 행동주의적 활동의 수단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수행하는 대로 해왔다. 이 시대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어떤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의 미학을 찾아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부분이 자연미술과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적절하게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인간과 자연이 균형적인 시선 속에서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자연은 스스로가 신이다. 우리는 그 신성을 받은 존재이다. 자연이나 우리나 다른 존재가 아니다. 인류는 지구 어머니를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 영적 삶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성경에도, 만물에 신성이 있기에 하나님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나무나 돌, 자연의 질서가 움직이는 걸 보면 거기에 신성이 있는 것을 안다. 우리 자신 안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자연 속에서 어떤 작업을 할 때 무엇에 주목하면 그것과 대응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튀어나온다.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삶의 경험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외부 자연의 무한함 만큼이나 내 안의 무한한 자연이 내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훨씬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게 양쪽의 자연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혹은 내가 죽어서도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 안팎의 자연이 잘 순환하고 만나야 객관화된 가치를 자연에 부여할 수도 있고, 나 자신에게도 그런 가치가 부여된다. 쌍방에 가치를 부여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생기는 게 아닐까.
인간이 상실한 게 바로 그 ‘서로 가치’의 부분이다. 현재는 인간의 ‘홀로 가치’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보면, 그는 조그만 두 평짜리 오두막에 살면서 종종 숲의 가장자리, 어둡고 음습한 늪을 향해 걸어간다고 말한다. 그곳에 자연의 지성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주체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자연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인간은 어떤 대안 속에서 살아야 할까?
‘화석 연료를 쓰지 마라’, ‘자동차 타지 마라’, ‘에어컨 틀지 마라’ 이런 운동도 중요하지만 그걸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게 아니어도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인간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몰아쳐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그것을 꺾어 돌릴 수 있을까? 자연미술은 1980년대 초반이 참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 우리는 20대였다. 대학교 3, 4학년이었고 돈이 없던 시절이었다. 작가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생각도 없을 때 순수하게 자연과 만났다. 그걸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다들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살지만 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작업했다. 에센스를 끄집어내서 자연과 만나는 것이다. 예술이 갖춰야 할 것을 충분히 갖추면서, 또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려도 되는 자유로운 위치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살기 위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 이 즐거운 세계가 나에게 있으니 그것으로 버텨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20대에 이미 그 즐거움을 맛보았다. 욕심은 있으나 지나치게 염치없이 살려고 하진 않는다.
코로나가 터지고 누군가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다. “이제 인류는 자기 홀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사색할 수 있고 인간이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가 좀 더 깨끗해지고 나아지고 있다.” 너무 와닿았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문제나 미술의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역설적으로 관계의 단절 속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상황에서 관계 맺기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만남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의례적인 행사나 자기 인맥 관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나’로서 그 사람을 만나야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다. 이런 시기일수록 자기를 성찰하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진정한 만남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원길
전원길

 

자연미술가.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런던예술대학 첼시예술대학 대학원 순수미술 석사를 받았다. 실내외에서 설치, 사진, 회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02년 안성시 미양면에 최예문 작가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를 열고 창작활동을 하며, 자연미술을 소개하고 연구하는 창작교류의 장을 열고 있다. 1981년 창립한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에 참여해 활동하며, 자연미술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현재 야투인터내셔널 프로젝트 디렉터, 울산과학기술원 사이언스월든 프로젝트 연구원, 소나무 전시감독을 맡고 있다. 《공생-칠색공간》(2017), 《마당초 프로젝트》(2015), 《태풍의 징조》(2014)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으며, 저서로 『자연으로 몸으로』 『세계 자연미술의 현장』 『녹색감각』 등이 있다.
홈페이지 www.sonahmoo.com/artnot
김종길
김종길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학교엔 성프란시스대학을 시작으로 경기지역 자활센터에서 인문학강연을 하였고, 녹색대학 생명문화연구소 부소장과 지순협대안대학 교과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기문화재단 다사리문화학교를 개설했다. 서울과 화성에서 하늘 배곧(얼숨 틔워는 하늘학)을 열고 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이동석 전시기획상, 자연미술이론연구상,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 장려상, 김복진미술이론상, 올해의 큐레이터를 수상했다. 저서로 『포스트 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삶창, 2013), 『한국현대미술연대기 1987~2017』(삶창, 2013)가 있고, <경기천년도큐페스타: 경기 아카이브_지금> (2018), <시점時點·시점視點 – 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 를 기획했다.
gjg68@hanmail.net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작품 사진 제공 _ 전원길 작가

위 기사의 출처는 문화예술교육 웹진 arte365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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